2017. 2. 13. 08:51
생각.
삶은 참 풀기 어려운 숙제 같다.
서로 충돌하는 가치관과 감수해야 하는 희생, 그리고 그 사이에 생기는 여러 딜레마들...
모든일에, 작은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일의 진척이 느리다.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융통성과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삶의 우선순위를 세워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선순위를 요구해온다.
바늘구멍일때 방치해두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러기엔 불완전한 세상에서 바늘구멍은 너무 많아 항상 구멍 메우기에 정신없다.
제대로 최선을 다해 살자는 마음은 어느새 완벽주의로 자리잡아, 공격적이고 방어적으로 변해가고 여유와 배려와 따뜻함을 잃어간다.
제때,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걸 주고자 하는 마음은 어느새 조급함이 되어 삶을 누리지 못하고 항상 지쳐있다.
지쳐있는 나는 이것을 위해 저것에는 이기적으로 대한다.
그리스도인, 제자로서 내게 주어진 사명(?)은 오히려 큰 짐이 되어간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좁게 만들어 간다. 나를 얽매어 간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 한다. 그런데 함께함이란 과연 뭘까?
주님 안에 누리는 평안과 여전히 남아있는 삶의 숙제들...
때로는 세상사람들이 더 긍정적이고 배려심 깊고 삶을 잘 누리는 것 같다.
세상은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곳일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누리고 살 순 없을까? 그저 주어진 삶을 깊은 고민없이 살아갈 순 없을까?
나의 왜곡 때문이겠지만, 기독교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고자 쌓아왔던 지난 내 삶의 태도들이 오히려 나를 옥죄어 오는 것 같다.
세상은 넓고 누릴 것이 참 많아 보이는데, 모든 것을 검열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삶의 영역은 좁아지고 나는 쪼그라드는것 같다.
각박해지는 세상, 빠르게 진보하는 기술, 깊어지는 빈부격차, 부조리와 불의, 자기 행복과 안락함...
이런 것들을 바꿀 능력과 단호한 의지도 없으면서 괜한 부담감만 남아 누리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나...
아무 생각없이 세상을 그저 누리며 살고 싶다.
한편으로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겠지만,
오늘은 그냥 그렇다.
서로 충돌하는 가치관과 감수해야 하는 희생, 그리고 그 사이에 생기는 여러 딜레마들...
모든일에, 작은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일의 진척이 느리다.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융통성과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삶의 우선순위를 세워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선순위를 요구해온다.
바늘구멍일때 방치해두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러기엔 불완전한 세상에서 바늘구멍은 너무 많아 항상 구멍 메우기에 정신없다.
제대로 최선을 다해 살자는 마음은 어느새 완벽주의로 자리잡아, 공격적이고 방어적으로 변해가고 여유와 배려와 따뜻함을 잃어간다.
제때,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걸 주고자 하는 마음은 어느새 조급함이 되어 삶을 누리지 못하고 항상 지쳐있다.
지쳐있는 나는 이것을 위해 저것에는 이기적으로 대한다.
그리스도인, 제자로서 내게 주어진 사명(?)은 오히려 큰 짐이 되어간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좁게 만들어 간다. 나를 얽매어 간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 한다. 그런데 함께함이란 과연 뭘까?
주님 안에 누리는 평안과 여전히 남아있는 삶의 숙제들...
때로는 세상사람들이 더 긍정적이고 배려심 깊고 삶을 잘 누리는 것 같다.
세상은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곳일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누리고 살 순 없을까? 그저 주어진 삶을 깊은 고민없이 살아갈 순 없을까?
나의 왜곡 때문이겠지만, 기독교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고자 쌓아왔던 지난 내 삶의 태도들이 오히려 나를 옥죄어 오는 것 같다.
세상은 넓고 누릴 것이 참 많아 보이는데, 모든 것을 검열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삶의 영역은 좁아지고 나는 쪼그라드는것 같다.
각박해지는 세상, 빠르게 진보하는 기술, 깊어지는 빈부격차, 부조리와 불의, 자기 행복과 안락함...
이런 것들을 바꿀 능력과 단호한 의지도 없으면서 괜한 부담감만 남아 누리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나...
아무 생각없이 세상을 그저 누리며 살고 싶다.
한편으로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겠지만,
오늘은 그냥 그렇다.
2016. 11. 29. 08:13
생각.
믿음이란,
때로는 눈을 감고 걷게 하시는 것과 같다.
실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고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지만,
주위가 낭떠러지 같아 도리어 두려움에
떨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까봐,
그저 내 손 붙잡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눈을 감고 걷게 하실 때가 있다.
그 믿음에 순종 못해, 주위를 마구 살피느라
결국 절망하는 나를 보게 된다.
때로는 눈을 감고 걷게 하시는 것과 같다.
실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고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지만,
주위가 낭떠러지 같아 도리어 두려움에
떨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까봐,
그저 내 손 붙잡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눈을 감고 걷게 하실 때가 있다.
그 믿음에 순종 못해, 주위를 마구 살피느라
결국 절망하는 나를 보게 된다.
2016. 7. 11. 08:15
생각.
서울의 분주한 출근길을 보면서, 또 따라가면서
그리스도인의 길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에 쫓기든 급히 달려가는 무리 속에서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것.
주변에 한 눈 팔지 않고 그 분께 시선을 맞추며 걸어가는 것.
출근길은 이 시대를 반영하는 작은 척도이며,
그 길을 지금 나는 어떻게 걸어가고 있는가는 이 세상과 주님 앞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반영하는 작은 척도가 아닐까 한다.
분주히 뛰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뛰어가는 나를 보며 오늘은 한템포 걸음을 늦춰본다.
그리고 그 무리 속에 뒤쳐져가는 어색한 나에게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본다.
그리스도인의 길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에 쫓기든 급히 달려가는 무리 속에서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것.
주변에 한 눈 팔지 않고 그 분께 시선을 맞추며 걸어가는 것.
출근길은 이 시대를 반영하는 작은 척도이며,
그 길을 지금 나는 어떻게 걸어가고 있는가는 이 세상과 주님 앞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반영하는 작은 척도가 아닐까 한다.
분주히 뛰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뛰어가는 나를 보며 오늘은 한템포 걸음을 늦춰본다.
그리고 그 무리 속에 뒤쳐져가는 어색한 나에게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본다.
2016. 7. 10. 16:06
생각.
이따금씩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면서 히죽히죽 웃는 20대들을 볼 때가 있다.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거겠지만,
그 중 일부는 썸남썸녀 또는 남친, 여친과
알콩달콩 메시지를 날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30대 중반을 걸어가고 있는 나의 20대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라기 보다 그 시절 즈음 느꼈을 설렘이랄까?
메시지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답문이 왜 안오나 노심초사하며, 서로 주고 받는 사소한 이야기들에도 짜릿함을 느꼈던.
지금은 더 깊은 사랑으로 지금 나름의 행복과 편안함과 따뜻함이 있지만,
그런 알콩달콩함은 또 그 때 그 시절에안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걸 보면 나도 이젠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었나 보다.
특히, 아저씨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땐 더욱이.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거겠지만,
그 중 일부는 썸남썸녀 또는 남친, 여친과
알콩달콩 메시지를 날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30대 중반을 걸어가고 있는 나의 20대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라기 보다 그 시절 즈음 느꼈을 설렘이랄까?
메시지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답문이 왜 안오나 노심초사하며, 서로 주고 받는 사소한 이야기들에도 짜릿함을 느꼈던.
지금은 더 깊은 사랑으로 지금 나름의 행복과 편안함과 따뜻함이 있지만,
그런 알콩달콩함은 또 그 때 그 시절에안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걸 보면 나도 이젠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었나 보다.
특히, 아저씨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땐 더욱이.
2016. 4. 18. 08:31
생각.
세상을 살아간다는게 때로는 어떤 의미인가, 돌아볼 때가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예수님을 따른다는것.
삶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정말 큰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다.
어쩌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지구와 화성에 사는것보다 더 큰 다름일것이다.
먼저, 존재의 의미부터 다르다.
존재의 정체성이 다르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다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외계로부터 지구에 사는 히어로들은 어땠을까?
슈퍼맨, 손오공 등등...
나와 다른 존재, 다른 가치, 다른 삶의 방향, 다른 삶의 방식...
그 가운데 지구에서 살아간다는건...
지구인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는게...
그러면서 지구인과 똑같이 살 순 없는...
세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간다는건...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악한 영이 말한 것처럼
세상 속에서 묻혀서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살라는 유혹이 나를 흔들때가 있다.
아니, 나도 모르게 젖어들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서 경각심을 느끼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세상에 함몰되지 않는다는게 참 힘들게 느껴진다.
매사에 깨어 있는다는게 참 버겁게 느껴진다.
그냥 멍 때리다간 어느새 젖어 있는 나를 본다.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예수님을 따른다는것.
삶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정말 큰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다.
어쩌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지구와 화성에 사는것보다 더 큰 다름일것이다.
먼저, 존재의 의미부터 다르다.
존재의 정체성이 다르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다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외계로부터 지구에 사는 히어로들은 어땠을까?
슈퍼맨, 손오공 등등...
나와 다른 존재, 다른 가치, 다른 삶의 방향, 다른 삶의 방식...
그 가운데 지구에서 살아간다는건...
지구인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는게...
그러면서 지구인과 똑같이 살 순 없는...
세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간다는건...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악한 영이 말한 것처럼
세상 속에서 묻혀서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살라는 유혹이 나를 흔들때가 있다.
아니, 나도 모르게 젖어들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서 경각심을 느끼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세상에 함몰되지 않는다는게 참 힘들게 느껴진다.
매사에 깨어 있는다는게 참 버겁게 느껴진다.
그냥 멍 때리다간 어느새 젖어 있는 나를 본다.
주님, 도와주세요.